자율운항선박기술, 이젠 전 세계 속도전
21.11.09. 현대해양 김엘진 기자
국제 표준규정 제안 및 제도 마련 시급
[현대해양] 헨리크 툰포스(Henrik Tunfors) 국제해사기구(IMO) 자율운항선박 의장은 지난 달 27일 해양수산부가 주최한 ‘2021 한국해사주간(KOREA MARITIME WEEK)’에서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 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면, 자율운항선박이 도래하는 현재 상황은 ‘해운 4.0’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전 세계 자율운항선박시장 규모는 2016년 66조 원 수준에서 올해 95조 원으로 크게 폭등했으며, 2025년에는 180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2018년 5월 IMO 자율운항선박 운항에 따른 제도적 장치 마련에 착수하며 국제적 투자와 기술 개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결과다. 현재 IMO는 자율운항선박의 실제 운용 관련 제도 개정 논의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자율운항기술 실증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자율운항선박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속도’에 달렸다고 말한다.
자율운항선박은 수면 상에서 사람의 개입이 없거나 최소한의 개입으로 운항하는 선박을 의미한다. IMO는 자율운항 기술 수준을 △일부 기능이 자동화된 선박 △선원이 탑승한 상태에서 원격 제어가 가능한 선박 △무인 상태로 원격 제어가 가능한 선박 △선박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선박 등 4단계로 나눠 3단계까지는 부분자율운항선박, 4단계는 완전자율운항선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왜 자율운항이 필요한가
왜 자율운항이 필요한가. 첫째, 해양사고는 대부분 운항 과실로 인해 발생한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국내 해양사고 발생건수는 2015년 2,101건에서 2020년에 3,156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해양사고의 원인은 해상악화 등 자연적인 요인과 선박의 노후화와 같은 선박적 요인보다 인적 과실에 의한 것이 90%나 차지한다.
둘째, 해운 인력 부족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발틱국제해운거래소(BIMCO)와 국제해운회의소(ICS)는 ‘해운인력 보고서’에서 2015년 해기사 인력 부족률 2.1%가 2025년에는 18.3%로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일본 선사 NYK는 선원 40% 이상이 55세 이상으로 선원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셋째, 선박운영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율운항선박기술개발사업 통합사업단(이하 사업단)의 자료에 따르면 (그림1), 자율운항선박의 경우 현재의 화물선 운영비의 최대 22%를 감축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완전자율운항선박이 상용화된다면 선원의 거주공간과 안전장비 등도 필요하지 않기에 공간 활용성도 높아져 더 많은 화물을 선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인 조선·해운 산업을 지키기 위함이다. 현재의 글로벌 1위 조선업, 7위 해운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자율운항선박 기술 경쟁에서 앞서나가야 한다.
임정빈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교수는 “자율운항선박기술 시장은 절대로 국내시장이 타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유럽에서는 롤스로이스나 노르웨이 기업 콩스버그(Kongsberg Maritime) 등 굵직한 기관과 정부가 움직이며 관련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앞장서려면 ICT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6월 ‘자율운항선박 개발 지원 정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0월 14일에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촉진과 조기 상용화를 위해 2030년까지 추진할 주요 과제를 담은 ‘자율운항선박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이하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2005년 5월 구성한 ‘산·학·연·관 협의회’를 통해 기술 발전에 따른 시나리오를 예측했고, 이를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규제를 정비해 나가기 위한 로드맵(총 4대 분야, 31개 과제)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자율운항선박 및 운항인력 관련 기준 △실증센터 구축과 관련 기준 △원격도선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규정과 관련 제도 △시스템 및 인증체계, 사고 대응 기준 등을 마련해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실제 해수부는 산업자원부와 함께 2019년 11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고 2020년 6월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사업 통합사업단’을 발족했다. 사업단은 같은 해 9월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아시아와 ‘자율운항 지능형 시스템 실증 및 성능 시험 개발’ MOU를 체결했다. 사업단은 6년 계획으로 자율운항선박 관련 프로젝트 13개 수립·추진하고 있다.
김진 사업단장은 “지금은 기술력의 검증이 필요한 때”라며, “울산에 성능실증센터를 내년 6월 준공하게 되는데 이후 FRP 소형선박으로 테스트를 하고, 2024~2025년에는 대형선박으로 실증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IMO나 해수부 등이 목표한 2030 완전자율운항선박 상용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단장은 “상업 선박의 경우에는 선사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데, 대형선박은 1조 원에 달하는데 무인으로 대양을 건너겠다고 나설 곳이 없지 않겠느냐”며 “법적인 문제나 보험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앞으로 9년은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전쟁
현재 자율운항선박의 핵심 기술은 유럽이 선점하고 있으며, 중국·일본도 국가적 차원에서 자율운항선박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 핀란드 국영 해운사 핀페리는 영국 롤스로이스와 함께 세계 첫 완전자율운항 여객선 ‘팔코(Falco)호’에 8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시범운항에 성공했다. 팔코호는 IMO 기준 3단계, 무인으로 원격 제어가 가능한 수준에 속한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초의 무인 자율운항 화물선 ‘야라 버클랜드(YARA Bikeland)호’의 첫 정식 운항을 계획하고 있다. 야라 버클랜드호의 선가는 일반 선박의 3배에 달하지만, 연간 운영비용의 약 90%를 절감하고 배기가스는 전혀 배출하지 않는 전기추진 시스템을 갖췄다. 노르웨이 언론사 「텔레마크사비사(Telemarksavisa)」는 지난달 20일 “현재 기술 테스트를 거치고, 새로운 규정을 정하고 있다. 11월 테스트 운전을 거치고 내년 봄 정기적으로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다”라고 보도했다.
지난 6월 15일에는 영국 비영리 법인 프로메어(Promare)가 운영하고, IBM이 후원한 자율운항선박 ‘메이플라워(Mayflower)호’가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다. 메이플라워호는 영국을 출발해 3일간 평균 7노트의 속도로 약 833km 거리를 항해했으나, 추진 시스템에 기계적 결함이 발생해 6월 19일 예인선에 의해 회수됐다. 태양광 패널과 발전기로 전력을 생산하는 시스템의 연결부위 파손으로 전력 생산에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IBM의 프렛 파네우프 프로젝트 디렉터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비 필수 시스템 전원의 일시적 중단을 확인했지만, 자율주행 인공지능(AI)은 완벽하게 작동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율운항선박 시운전에 성공했다. 2019년 10월에는 일본 선사 NYK는 자동피항시스템이 적용된 2만톤급 자동차 운반선 ‘아이리스리더호’의 시운전에 성공했으며, 같은 해 12월 중국의 첫 무인 자율운항선박 ‘근두운 0호’는 홍콩-마카오 구간 시범운항에 성공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기술 분석 및 해양 컨설팅 전문 업체 테티우스(Thetius)는 자율운항선박관련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2025년까지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자율운항 기술 관련한 3,000 건에 가까운 특허 중 96%가 중국의 대학과 민간 기업에서 등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국내 기업 실증단계 들어서
국내의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삼성·현대·대우 조선3사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 6월 16일 현대중공업의 자율운항선박 전문 자회사 아비커스의 12인승 크루즈 선박이 국내 최초로 선박의 완전 자율운항에 성공했다. 경북 포항 운하 일원에서 열린 이날 시연회에서 선박은 AI로 선박의 상태와 항로 주변을 분석해 증강현실 기반으로 전달하는 시스템 ‘하이나스(HiNAS)’와 선박의 이·접안 지원 시스템 ‘하이바스(HiBAS)’ 등을 활용해 약 10km 정도를 자율운항했다. 아비커스는 자율운항 기술을 고도화해 이르면 올해 안에 LNG 운반선으로 대양 횡단에 도전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레저보트용 자율운항 솔루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9월 2일, 세계 최초로 실제 해상에서 자율운항하던 두 척의 선박이 서로를 인지하고 충돌을 회피하는 기술 실증을 진행해 성공시켰다. 신안군 가거도 인근해역에서 진행된 이번 실증에는 목포해대의 9,200톤급 대형 실습선 ‘세계로호’와 삼성중공업의 300톤급 예인선 ‘삼성 T-8’이 투입됐다. 두 척의 선박에는 삼성중공업이 독자개발한 자율항해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탑재해 △자율운항 선박간 충돌회피 △ㄹ자 형태의 다중 경유점 경로제어 기술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두 선박은 각자 지정된 목적지를 향해 최대 14노트의 속력으로 자율운항 중에 서로 마주보는 상황이 오자, 최소근접거리인 1해리(1.852km) 밖에서 서로를 피한 후 지정된 목적지로 운항을 계속했다. 선박의 운항 상황 모니터링은 실증 해역에서 300㎞ 떨어진 육상관제센터 삼성중공업 대덕연구소에서 진행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스마트십 솔루션 ‘DS4(DSME Smart Ship Platform)’을 독자 개발해 최근 HMM에 인도한 컨테이너선박에 탑재했다. 이 솔루션을 통해 선주는 선박의 메인 엔진·공조시스템(HVAC)·냉동컨테이너 등 주요 시스템을 원격으로 진단한 뒤 선상 유지·보수작업을 지원하게 된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은 원격조정 시 선박과 육상 관제탑을 연결하는 통신 체계를 불안정성이나 해킹 시도 등의 위험에서 지키기 위한 선박 사이버 보안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2020년 8월 개최된 자율운항보트 경진대회 신속한 실증과 최적 기술 도입 필수
자율운항선박 시대의 도래는 국내 조선업계에 어떤 의미일까? 아날로그 체계의 운항기술은 유럽·일본이 독점 중이고, 가격경쟁력은 중국이 월등하지만, ICT(정보통신기술), IoT(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등 디지털 시장에 진입하면 국내 업계에게도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채종주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해양안전기술센터장은 “자율운항선박의 핵심기술은 노르웨이에서 상당히 가지고 있다”며 “이미 존재하는 기술 개발에 힘쓰기보다는, 아직 기술발전이 미흡한 부분, 빅데이터를 이용한 의사결정지원 시스템 등 SW(소프트웨어) 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ICT 접목 부문에 있어서는 우리가 최고수준이라고 본다”며, “핵심기술이 부족하다는 의견은 특허나 해당 기술의 시작점에 대한 학구적인 문제제기이며, 실제 기술을 다루는 우리의 SW적인 기술력은 부족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빠른 기술 발전과 상용화를 위해서는 선박에 대한 지식과 ICT 관련 지식의 연계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며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실증을 거치고 상용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이러한 새로운 인력창출을 위해 한국해양대에서도 2022년 해사인공지능보안학부를 새로 개설했다고.
지난달 20~23일,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은 자율운항선박 원격제어 신규 교육을 실시했다. 이 교육에서는 관련 분야 학교, 기업, 연구소 등의 연구원을 대상으로,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원격으로 선박을 조정하는 실습을 진행했다. 연수원에서는 올해 또 한 번의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며,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교육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채 센터장은 “현재 원격조정 운항사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들이 선원이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우선은 내년쯤 그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겠지만, 국제운송을 해야 하니 IMO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데, 향후 4~5년은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은 지난 10월 자율운항선박 원격제어 교육을 진행했다. “IMO 표준화 규정 선제안 해야”
그러나 자율운항선박 기술만으로는 시장을 선도하기엔 부족하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법적·제도적 규정 마련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원격운항자의 법적 의무와 역할이 정립되지 않았으며, 사고가 날 경우 법적 책임소재나 보험 적용 부분에 대한 제도도 전무하다. 더불어 기존의 해운 규정과의 충돌, 시스템 오류 및 해킹 등의 통신 사고 발생 시의 책임소재에 대한 명확한 체계 확립도 필수적이다.
IMO 역시 현재 자율운항선박에 관련한 규정이나 선원훈련 표준 지침이 정립된 후에야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가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헨리크 툰포스 의장은 “현재 IMO의 선박관련 규정 대부분은 사람이 업무를 수행할 경우에 대한 것이기에, 2025년까지 자율운항선박의 용어 정리부터 국제 규정과 규제사항을 정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과 현장의 경험을 반영한 규정’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며, “자율운항선박은 국제적인 비즈니스이며, 기술의 발전과 상용화를 위해서는 국가간의 경쟁보다는 협업이 필수적이고, 그래야 비용절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IMO 대응을 담당하고 있다는 채 센터장은 “기술적 요인이든 인적 요인이든 중요한 것은 표준화를 먼저 만들어 IMO에 제안을 하는 것”이라며 “빠르게 실증 기반을 만들고, 효율적인 기술을 적용해 상용화하고, 빠르게 표준화를 제안하는 것이 우리가 이 시장에서 앞서갈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 현대해양(http://www.hdhy.co.kr)